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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에 대한 몇 가지 상식 김강석 201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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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리스마스의 기원 

 

12월은 원래 고대로부터 이교도들이 태양의 날, 또는 태양신의 날로 숭배하며 먹고 마시고, 선물을 주고 받던 절기였습니다. 그런데 AD313년에 교회가 공인되어 핍박이 그치고, 기독교가 국교로 까지 인정되자, 태양의 날에 대한 관습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를 고심했습니다. 절기와 관습은 하루 아침에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에 갑자기 추석을 없앤다, 설날을 없앤다 하면, 없어지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콘스탄틴 황제는 한 가지 묘안을 냅니다. 태양의 날을 축하하되, 그날의 주인공을 예수님으로 하여 축하하고 지키도록 선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지만, 12월에 지키게 되면 이방인의 절기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 속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도는 아주 지혜롭고 성공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12월을 태양의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일로 지키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축하하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크리스마스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고, 태양일의 습관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탄 절기를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면서 환락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을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준비하고 맞이해야 합니다 

 

2. 크리스마스 캐럴(Christmas Carol)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성탄 소식을 알려주면서 성탄절의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캐럴입니다 캐럴은 원래 14세기 경에 영국에서 생겨난 밝은 노래들을 일컫는 음악의 한 장르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점점 성탄절을 축하하는 노래만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1818년에 만들어진 곡이며, 그 보다 좀 더 오래된 곡들이 기쁘다 구주 오셨네’(1742년에 헨델이 만든 곡입니다.) ‘저 들 밖에 한 밤 중에같은 곡은 17세기부터 전해오는 영국전통 캐럴에 성탄 가사를 입힌 것입니다. 

캐럴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원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최초의 캐럴은 누가복음2장에 나오는 천사들의 찬송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 얼마나 아름다운 성탄 찬송입니까. 이것이 최초의 성탄 캐럴이라고 봅니다.  

성탄캐럴의 역사적인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캐럴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고, 또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3. 각 나라의 성탄 풍습들  

 

선물을 주는 산타클로스나 성탄절 양말 걸기 같은 풍습들은 대부분 영국과 네덜란드 등 유럽 쪽에서 전래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성탄절과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고 예배에 참석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성탄절이 1225일이 아니라, 17일이라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성탄절이 하루로 끝나지 않고 3주간의 성탄 시즌을 갖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이집 저집을 다니며 성탄절 노래를 부르고 동전을 받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이 돈을 모아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습니다. 어른들도 악기를 연주하고 캐럴을 부르면서 이웃들을 방문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성탄절 이브에 잠을 자지 않습니다. 이는 성탄절 이브에 이웃이나 친지를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성탄의 아침을 맞이합니다. 아이들은 선물을 넣을 수 있도록 양말을 벽난로 위에 걸어놓습니다. 영국에서는 성탄절 전날 밤에 통나무를 통째로 벽난로 앞에 갖다 놓고, 그것을 벽난로 안으로 던지기 전에 가족들이 그 나무에 앉아 보는 풍습이 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가정에 행운이 계속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하는 풍습이라고 합니다. 아일랜드에서는 촛불 밝히기를 합니다. 성탄절 전날 밤에 사람들은 집안 곳곳에 촛불을 밝히고 창문을 조금씩 열어 놓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이 아기를 낳기 위해 방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그 집에 손님이 방문하면 친절을 베풀고 후하게 대접합니다. 촛불 밝히기는 가정 뿐 아니라 호텔이나 빌딩에서도 행해집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밝혀 둔 촛불은 다음날 아침 메리 즉,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성탄절 행사가 성 니콜라스의 날인 126일부터 시작됩니다어머니가 특별히 방 하나를 정해서, 그 방을 장식합니다. 그곳은 성탄절 이브까지 다른 가족들에게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 방은 성탄절 이브에 짜잔~’하고 가족들에게 공개되는데, 공개된 후 가족들은 그곳에서 성탄을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성탄절에 아기 예수가 누웠던 말구유를 상징하는 구유를 이집 저집 옮겨가면서 캐럴을 부르는 풍습이 있습니다. 교회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집부터 시작해서 이웃으로 옮겨가면서 행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최종 목적지인 교회 계단에 이르면 그동안 준비한 성탄절 행사에 참여하고, 마지막은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찬양으로서 행사를 마무리를 짓습니다. 벨기에서는 성탄절 행진이 벌어집니다. 군중과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행렬에 참여합니다.

 

4. 산타클로스

  

지중해에 위치한 마을인 '마이라(Myra)'에서 4세기 교회의 감독이었던 니콜라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였습니다. 가난한 가정을 구해주었고, 사회에 나온 죄수들, 가난한 어부들, 특히 불쌍한 고아들을 많이 돌보았습니다. 니콜라스는 12월이 되면 큰 주머니 속에 선물을 가지고 남들이 보지 않는 밤중에 가난한 아이나 병든 아이가 있는 가정을 찾아가 문 밖에 선물을 놓고 갔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고 우러러보면서 성 니콜라스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후대로 오면서 산타클로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성 니콜라스산타클로스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산타클로스가 성탄절의 의미를 훼손하고 예수님이 계셔야 할 성탄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해버렸다는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많이 기대하면서 기다립니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 산타클로스 성탄절 동화와 관련된 캐롤입니다. 어린 시절 동화는 진리를 비유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동화의 감성을 잘 배운 아이가 커 가면서 현실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동화의 세계가 필요합니다. 산타클로스를 즐겁게 배운 아이는 자라면서 예수님을 더 기쁘게 영접하게 됩니다. 평생 산타클로스를 현실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개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동화의 세계와 현실을 저절로 구분하게 됩니다. 그러니, 성탄절에 자꾸 산타클로스의 동화를 걷어내고, 심각하고 진지하게 예수님만 주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교육적으로 볼 때, 그다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만 접근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타클로스는 성탄절 동화입니다. 동화는 동화로 보면 됩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산타클로스의 이야기를 통해 선한 일을 더 많이하도록 따뜻하게 가르치면 되는 것입니다. 산타클로스는 헨젤과 그래텔의 과자집이나, 백설공주,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은 동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동화로 그냥 그렇게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따뜻한 성탄절 동화가 하나쯤 있는 것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주는 교훈을 굳이 생각해보자면, 성탄을 기다리는 소망, 그리고 사람은 주의 뜻대로 선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사람은 선악 간에 심판받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사랑하라는 진리,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동화입니다.

 

5. 성탄절 양말

 

성탄절 전날 밤에 양말을 걸어 놓는 풍습은 산타클로스로 더욱 잘 알려진 성 니콜라스 당시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입니다소아시아의 미라(Myra)라는 도시를 관할하던 니콜라스 주교가 우연히, 거듭되는 사업의 실패로 몰락한 귀족과 결혼 지참금이 없어 결혼을 못하고 있는 그의 세 딸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음씨 좋은 주교는 그들의 딱한 처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끝에 묘안을 하나 생각해 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인 성탄 전날 밤, 주교는 살며시 그 귀족의 집을 찾아 갔습니다.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한 주교는 준비해 간 지참금이 든 지갑을 굴뚝을 통해 안으로 던져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말리기 위해 벽에 걸어 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양말을 신으려다 양말 속에 들어 있는 돈을 발견한 세 딸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들은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은총을 베푼 그 사람과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후로 아이들은 뜻밖의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성탄절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양말을 걸어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풍습의 영향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우한 이웃에게 자비와 구제의 손길을 베푸는 일들이 행해지게 되었습니다.

 

6. 크리스마스 트리

 

 성탄나무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설은 6-7세기의 유럽의 연극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과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입니다. 그리고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튜튼족의 성수-거룩한 나무 사상(聖樹思想)과 고대 로마 풍습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설도 있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습니다.

먼저 연극놀이설을 살펴보면, 6-7세기 때 부터 사람들은 성탄 전야에 교회 안이나 마당에서 일종의 연극놀이를 했습니다. 그 놀이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였고, 그 장면에서의 주된 장식은 생명나무였습니다. 그러나 한 겨울에 나뭇잎과 열매가 달린 나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시절 유일한 상록수였던 전나무를 가져다 놓고 생명나무를 상징했는데 이것이 성탄목의 유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상징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와 관련된 일화입니다. 실화라기 보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덧입힌 것 같습니다. 어느 해 성탄절이 가까운 무렵이었습니다.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가난한 루터의 가정은 성탄을 축하하기 위한 그 무엇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기쁜 성탄을 우울하게 보낼 가족을 생각하니 루터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그는 가족들에게 아주 멋있는 성탄목을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성탄목을 살 돈이 없었기에 그는 숲으로 가서 성탄목으로 쓰일 나무를 직접 찾기로 했습니다. 숲으로 간 그는 열심히 나무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쓸 만한 성탄목은 사람들이 벌써 다 베어가버려서 마음에 드는 성탄목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날이 저물고도 한참을 헤맨 끝에 드디어 아주 멋있는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나무를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그를 걱정하며 기다리던 가족들은 멋있는 나무까지 가지고 돌아온 루터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은 그 나무에 멋있는 장식을 했습니다. 그해 그의 가족은 비록 가난했지만 멋있는 성탄목과 사랑이 있어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성탄나무에는 여러 가지를 장식하였는데

첫째로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성탄목에 금단의 열매를 상징하는 사과를 달았습니다. 사과는 죽음을 초래한 우리의 죄를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로 장미꽃을 달았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는 이사야 11:1 말씀과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라는 이사야 35:1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장미꽃은 어둠과 절망을 뚫고 생명을 피워내시는 소망의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셋째로 과자 모양의 빵을 달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라는 요한복음 6:35 말씀처럼 성탄목의 빵은 예언대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양식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촛불을 달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성탄은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빛 되신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탄의 본래 상징물을 회복하고 잘 교육해서, 성탄 트리의 참 의미를 구현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7.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인사 카드 보내는 행사는 빅토리아 시대(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했던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는 영국 역사에서 산업 혁명의 경제 발전이 성숙기에 도달한 대영 제국의 절정기로 봅니다.)에 시작되었습니다. 중세시대에 유럽의 목판공들이 종교적인 주제를 담은 내용을 인쇄했었는데, 최초의 상업성을 띤 크리스마스와 신년 카드는 1843년에 영국 런던에서 인쇄 되었다고 알려집니다. 최초의 카드는 1843년 영국의 헨리 코울 경을 위해 존 호슬리가 제작한 코올 호슬리(Cole-Horsley)카드입니다. 영국의 설화 미술가이자 왕립 학회원인 John Callcott Horsley (호슬리, 1817탄생-1903사망)가 친구인 Henry Cole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초기 관장)의 요청으로 최초의 크리스마스와 신년카드를 디자인했고, 이 카드를 같은 영국 사람인 조빈스라는 사람이 석판 인쇄를 이용해서 1843년에 런던에서 1000장을 발매했습니다. 한 장당 가격은 1실링이었고 원판은 희귀품이라고 합니다. 이후, 1860년대에 새로운 원색 인쇄 기술이 발달하면서 카드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값도 내리면서부터 성탄절이 오면 예쁜 성탄절 카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며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8.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  

 

(seal)이란 우표와 같은 형태의 증표로서, 성탄절 카드나 편지에 이 실을 붙이는 풍습은 1903년 덴마크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덴마크의 한 우체국 서기였던 아이날 홀보엘(Einar Holboell)이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결핵 환자들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크리스마스 실의 판매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이러한 계기로 시작된 크리스마스 실은 1903년 덴마크에서 판매가 시작된 이래 그 판매의 취지가 알려지면서 급속도로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판매되었으며, 판매 수익금은 결핵 환자를 위해 쓰여져서 그 치료와 예방에 큰 성과를 가져 오게 했습니다.

한편, 과거 많은 결핵 환자들이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결핵 퇴치를 위한 크리스마스 실이 발행, 판매된 것은 1933년부터였습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에 의료 선교사로 와 있던 미 감리회 의료선교사 홀(Sherwood Hall)이 미국에서 실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와 1932년에 일제 총독부의 허가로 발행 작업에 들어가면서 부터였습니다. 그 결과 1933년 한복 입은 자매와 소나무가 그려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이 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실 발행은 1940년 일제에 의한 미선교사의 강제 추방과 함께 중단되었으나 해방 후 대한결핵협회에서 다시 이 사업을 펴 오늘날까지 계속 발행하고 있습니다.

 

9. 크리스마스 색깔은 왜 빨강, 초록일까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색깔이 바로 빨간색과 초록색입니다. 트리 장식은 초록, 산타의 옷과 루돌프의 코는 모두 빨간색입니다. 크리스마스엔 항상 이 두 가지 색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확한 근거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몇 가지 유래를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기독교인들은 1225일에 예수 탄생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예수의 생을 상징하기 위해 초록색과 빨간색을 사용했습니다. 초록색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영원한 삶)을 표현했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상록수는 사시사철 항상 푸른 것이 영생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합니다. 빨간색으로는 예수의 보혈을 나타냈습니다. 보혈은 예수가 세상의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상징합니다. 

중세 유럽(13~14세기)에서는 기적극(Miracle Play)’이라는 종교극이 유행했습니다. 중세 사람들은 다른 오락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하는 연극을 구경하려고 교회로 모여들었는데, 글을 읽을 줄 몰랐던 대중들에게 연극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기적극은 드라마 유형으로 성서의 신·구약 이야기, 천지 창조와 인류 타락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에 못 박힘, 그리스도의 부활 등을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 중 낙원극(Paradise Play)’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자주 올려지던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던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내용입니다. 이때, 선악과를 연출하기 위해, 교회는 소나무에 빨간 공을 달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런 관습을 집으로 들여 각자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몄고 이때부터 빨간색과 초록색이 크리스마스의 색으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빨강과 초록을 사용하는 관습은 유럽 중세 시대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농신제(農神祭, Saturnalia), 지금의 크리스마스 무렵에 행해지던 고대 로마의 축제 기간에 농업의 신(토성, Saturnus)을 숭배했습니다. 1223일 축제가 끝나면 24~25 상승의 태양신 탄일 축제(Natalis Solis Invicti)가 이어집니다. 이때 사람들은 행운을 의미하는 호랑가시나무(holly)를 서로 주고 받거나 동그란 화환 모양으로 만들어 문 앞에 걸었습니다. 또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 가지로 집을 꾸미면서 풍년을 빌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록수 장식과 호랑가시나무의 빨간 열매는 고대 로마의 즐거운 축제일을 상징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전통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그런 문화를 성탄절에도 적용시키면서 기독교적인 해석을 추가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10. 구세군 자선 냄비

 

구세군은 선교와 사회봉사 활동을 주로 하는 기독교 교단입니다. 특히 연말에 실시하는 불우이웃돕기 모금운동인 '자선냄비'로 유명합니다. 자선냄비는 1891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당시 샌프란시스코 근교 해안에 배가 좌초돼 생긴 1000여명의 난민과 도시 빈민을 위한 모금활동 중 한 구세군 여사관이 쇠솥을 다리에 놓아 거리에 놓고 "이 국솥을 끓게 합시다"는 문구로 기금을 모은 것이 시초입니다.

그 후로 전 세계로 퍼져서, 붉은 세 다리 냄비걸이와 냄비 모양의 모금통, 제복을 입은 구세군 사관의 손 종소리로 상징되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이제는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실시하는 이웃사랑을 위한 모금 운동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재 100여개 나라에서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구세군 자선냄비의 모금활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192812월 당시 한국 구세군 사령관이었던 박준섭(조셉 바아)사관이 서울의 도심에 자선냄비를 설치하고 불우 이웃돕기를 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11. 성탄 축하 행사

 

어릴 적에 교회에 모여서 선물교환 했던 일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성탄의 기억은 아름다운 신앙 추억이기도 합니다. 옛날, 중고등학부 시절에는 교회에 모여서 밤을 새면서 선물교환을 하고, 레크레이션도 하고, 파티라고 하기는 좀 어색하지만, 아무튼 교회에서 즐겁게 지내다가, 새벽이 되면 다 함께 새벽송을 돌고 그랬습니다. 그때 참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선물교환이나 새벽송 같은 프로그램을 하는 교회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탄발표회도 많이 합니다. 찬양과 성극을 하기도 하고 세계의 크리스마스같은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세계 각국 사람들의 분장을 하고 나와서 그 나라 말로 성탄 인사를 하던 그런 모습들이 생각납니다흐뭇한 좋은 추억들입니다. 미국-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스페인- 펠리쓰 나비다(Feliz Navidad), 프랑스- 조이유 노엘(Joyeux Noel), 중국- 솅탄 쿠와일러(Sheng Tan Kuailoh), 독일- 프뢸리히 베인아크텐(Frohliche Weinachten),  그러나 우리나라 말로는 통일된 인사말이 없이 보통 메리 크리스마스를 씁니다. 우리 말로도 통일된 성탄 인사가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 임마누엘

 

1:23절은 구약성경 이사야서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근본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으니 말 그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인데, 왜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하셨을까요?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말의 뜻은 사람들이 그를 보면서 '임마누엘'을 고백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구세주가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속죄하심으로, 하나님과 화평의 길이 열렸고, 하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며, 친히 인도해주십니다. 지금은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늘 함께 하시고, 충만케 하십니다.

 

13. 세 가지 예물

 

동방에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세 명의 박사들이 3가지 예물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3가지 예물은 다 깊은 의미가 있는 것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이 그 의미를 다 알고 드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실 이 예물은 예수님이 앞으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의미합니다.

황금은 왕의 신분과 권세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 우주와 만물의 왕 중의 왕이 되십니다. 원래는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권세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황금, 즉 잃어버린 하나님 자녀의 신분과 권세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유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인류의 모든 죄악들을 해결하셨으므로,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의 향기를 나타내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단의 권세에 매어서 살던 옛 사람은 죽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향기로운 새 생명, 향기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신 것이 바로 유향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상에서 비굴하게, 비천하게, 자신을 비하하며 살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으로서 향기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몰약은 방부제와 마취제로 쓰이는데, 이는 예수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이 영원함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것입니다. 21:4말씀에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이었을 때의 모든 실수와 허물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고, 이 세상에서의 모든 슬픔과 고생과 아픔들도 기억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모든 애통함을 위로하여 주실 날이 곧 올 것입니다.

 

14. 예수 - 구원 - 복음

 

천사가 요셉에게 이르기를 아기의 이름을 예수 지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1:21)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도 우리에게 고통이 있고 고난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된 복은 세상에서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축복은 우리가 죄에게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우리의 행복에 있지 않고 우리가 거룩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진정한 축복인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세상에서 자기 욕심이 이뤄지면 그것이 복인 줄 알고, 죄가 있어도 벌을 받지 않고 넘어가면 그것이 복인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그런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거룩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복은 이 땅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있습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예수께서 친히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 인생은 거룩하게 됩니다. 거기에 우리의 진정한 복이 있습니다.

 

15. 겸손

 

성탄은 주님이 낮은 곳으로 오신 낮아짐의 영광사건입니다. 구세주의 영광은 세상이 영광 받는 방법과는 전혀 정반대의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상에서의 영광은 높이 올라간 것을 의미하지만, 주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작은 고을, 그것도 마구간 말구유에서 한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세상의 가장 천한 곳에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천사들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찬송했습니다. 천사들의 지시에 따라 냄새나는 마구간에 고개를 숙이고 찾아온 사람들만이 성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리가 찾아야 할 성탄의 영광입니다. 낮아짐의 영광, 겸손의 영광입니다. 그 모습이 우리가 회복해야할 성탄의 모습입니다.

오직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연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낮고 천한 곳을 향해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 오늘도 고통을 받고 있는 낮고 천한 자들을 돌아보고, 우리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가장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성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6. 평화 

 

성탄은 평화의 사건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든 지역과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평화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들과 인간들 사이에 서로 화해하는 샬롬의 사건이 곧 성탄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는 로마제국의 무력에 의해서 억지로 하여 이루어진 평화가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강력한 군대의 강압이 무서워서 일시적으로 조작된 껍데기의 평화가 있는 시대였습니다. 로마인들이 평화의 잔치를 만끽하는 그 밑에는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평화, 팍스 로마나는 진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위장된 가짜 평화 아래에는 6천만 명의 노예들이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주신 평화는 억압과 폭력의 힘의 지배로 이루어진 위장된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인종과 계급, 성과 연령의 모든 벽을 헐고 함께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면, 탕자가 그의 아버지에게 용서받고 환영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와 환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사건입니다. 진정한 성탄의 평화는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시간이요, 동시에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샬롬의 평화입니다. 모든 증오와 폭력을 버리고 비천한 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비참한 삶에서 일으켜 세우고 함께 누리는 평화입니다. “성탄 샬롬” “샬롬 크리스마스!” 입니다. 성탄을 통한 하나님의 평화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임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17. 섬김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여전히 낮은 자리에 임하셔서 소외되고 천한 자들을 돌보시고 계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0:28) 이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성탄절에 무엇을 받을까, 무엇을 즐길까를 생각하는 것은 성탄의 참된 정신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화려하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돌려서, 낮아지고 섬기는 자리로 내려가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섬기심으로 가장 아름다운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성탄의 어마어마한 사건이 바로 오늘 나를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경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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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운영자 2018.12.4 12:43

    우리의 죄를 상기시키는 사과!
    어둠과 절망을 뚫고 생명을 피워내는 소망의 예수님을 상징하는 장미꽃!
    생명의 근원과 양식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과자모양의 빵!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

    성탄의 참된 의미가 담긴 성탄 트리의 모습을 소망합니다.

    성탄절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모두 정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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